중앙사대부속중학교 후문. 적갈색 아스팔트 위에 노란색 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이었다.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을 오르면 서로 엇비슷한 높이의 같은 층 건물들이 이어지고 그 건물들 중간쯤에는 ‘컴사랑’이 있었다. ‘컴사랑’은 컴퓨터 서비스 업체로 네트워킹, 데이터복구, 조립, 중고컴퓨터 수거 및 매매, 노트북 매매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오래된 녹색과 빛바랜 빨간색의 시트지가 세 개의 미닫이문에 붙어있었다. 쓰레기통 밖으로 택배 상자들이 가득했고 부동산 전단지도 무수히 쌓여 있었다. ‘컴사랑’이 있는 건물 외벽은 회색 돌, 적갈색과 고동색이 섞인 벽돌이 교차로 붙어 만들어져 있었다. 알루미늄 재질로 제작된 문이 있었고 문의 손잡이 위로 보이는 창문(불투명한 유리)에는 흰색 불투명 시트지를 붙여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에어컨 실외기 호스는 ‘컴사랑’에서 시작되어 분리 벽을 지나 옆의 문 위로 이어졌다. 실외기가 다른 집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면 혹여 ‘컴사랑’은 분리된 벽 사이로 이어지는 곳인가. 이어지는 길의 정면에 ‘김포상회’가 있었다.
비뚤어진 삼각형 모양의 삼거리에서 돌아가는 내리막길, 주택가로 뻗어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어린이 보행도로까지, 세 방향의 도로 가운데에 김포상회가 있었다. 밝은 미소의 메신저, 빙그레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보였다. 하지만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최근 사용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 위로 파란색 방수 천막이 드리워져 있었고 안전 셔터가 3분의 1가량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음료 냉장고가 문 앞에 있었고 네 개의 미닫이문 옆으로는 철로 제작된 작은 의자와 창고처럼 보이는 컨테이너가 있었다. 비좁은 공간의 슈퍼 내부에는 파란색 철제 1층 선반이 가운데에 있었고 그 주위 세 면을 에메랄드색 철제 선반이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파란 선반 위로 상품이 앞에서부터 뒤까지 점점 높아지는 형태와 순서로 놓여있었다. 껌과 초콜릿, 사탕류가 앞에 배치되고 뒤로는 과자들이 놓여있었다. 한눈에 선반 위의 모든 상품이 보이는 구성이었다. 선반 아래에는 작은 캔부터 1.5리터 크기의 커다란 음료들이 일종의 블록처럼 틈 사이사이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벽을 둘러싼 에메랄드색 선반의 왼편에는 1층부터 3층까지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는 라면류가 있었고 4층과 5층에는 세제와 간장, 고추장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선반의 맨 위에 두루마리 휴지 세트가 있었다. 오른편에는 칸막이가 없었으며 1층부터 2층까지는 가운데에 진열되지 않은 봉지 과자류와 상자 과자류들이 보였다. 그 위로 커피 세트가, 5층에는 세제류가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맨 위에는 휴지 세트가 있었다.
“여기서 한 40년 됐죠. 처음 왔을 때는 전부 쪽방이었어요. 그때에 비하면 천지개벽이죠. 상상을 못 했어요.”
‘김포상회’는 흑석3구역재개발 정비사업 신축공사 현장 근처에 위치한다. 이곳을 지나니 오래된 미용실이 보였다. 50년 넘게 영업한 곳이다.
“그동안 흑석동에는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고 중앙대 앞에도 좋아졌고 병원도 생겼지만… 무엇보다 아무래도 첫째로는 9호선이 들어온 것이 큰 발전처럼 느껴져요.”
“여기도 재개발구역일 텐데… 9구역은 흑석동 내에서도 어떤 지역인 거예요?”
“예전부터 상권이 발달해 있는 곳이죠. 저쪽에 슈퍼나 세탁소도 오래되었고 흑석동에 몇 십 년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죠. 여긴 큰 사건이 없어요. 좀 서민적이지. 이웃도 좋고. ‘금마 약국’도 오래된 곳인데…”
“거기도 오래된 곳처럼 보이던데 항상 닫혀 있어요.”
“거긴 이제 안 하니까…”
“기름집 사장님 말씀 들어보니 ‘연못시장’도 있었다고 하던데요?”
“연못을 메꿔 시장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거기가 지금 2구역 자리. 151번 버스 정류장도 거기고.”
“그래도 많은 사람이 떠났다고 하던데, 예전에는 이 동네에서 어디가 살기 좋았어요?”
“대학교 쪽이 부촌이었죠. 전부다 2층집, 봄이 되면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집들이 좋으니 그런 것들도 다 돋보였었어요.”
대학교 근처는 대부분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로 바뀌었다. 하숙집과 자취방도 많이 줄었다. 변해가니까, 그곳에서, 혹은 그 주위에서 그 변화를 맞이하거나 견딜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자꾸만 밀려 나갔다. 떠난 사람들은 여기에 없다. 변화하지 않은 장소와 사람들도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장소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모두는 서서히 변해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