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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실슈퍼
연희사
(서대문구 창천동)
홍대24시불가마사우나

언제 시작하게 되었어요?

1972년에 시작했어요. 옛날부터, 친정어머니께서 신촌, 연대 앞에서, 학교 앞이니까 자리 잡은 거죠. 

 

수선집이나 양장점이 아니라 어떻게 가운이라는 분야를 선택하셨어요?

가운은 다른 옷, 양장이나 여자 옷 같이 세밀해야 하고 재고도 많이 쌓이는 종류가 아니에요. 의사 가운은 그런 게 없어요. 의류 쪽에서는 가운이 재고가 많지 않고 덜 까탈스러운 편이죠. 의사 가운은 작업복이니까 입고 편하게 일하는 게 주에요. 다른 옷이면 예쁘고 핏도 있어야 하지만, 의사 가운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처음부터 이게 제일 낫겠다 싶어서 시작하셨어요. 어머니께서 하시다가 제가 맡아서 한 지 벌써 30년 정도 된 것 같네요.

 

90년대부터 가업을 이어받으신 거군요. 그 당시에 신촌은 어떤 곳이었나요?

그냥 굴다리 밑에 학고방 같은 집들 뿐이었어요. 여기 상가들도 전부 1층이고 문방구들이 많았어요. 

 

문방구가 많았어요?

문방구 무척 많았죠. 저쪽 교회 아래로 다 문방구였어요. 몇 개씩 있었고, 지금 알파문구 자리도 원래는 거기 점원으로 있다가 사장님이 물려준 연세문방구였어요. 학교 앞이니까요. 굴다리 건너 쪽, 연대 정문을 저렇게 크게 만들기 전에 그 앞으로 쭉 작은 상가들이었는데 거기도 문방구가 많았어요. 10.26 사태에 계엄령 선포되고 그런 난리 때, 88 올림픽 때 터 없는 사람들 광명으로 보내고 그럴 때요. 그때는 저희도 그곳에서 장사했었어요. 굴다리 밑까지 다 상가였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촌에 계셨네요. 이렇게 가운 하나만으로도 유지를 한다는 게 너무 대단해 보여요. 

힘들죠. 그래도 어머니와 장사할 때는 전성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워낙 빠르게 발달하다 보니 기성품도 많이 나오고 공장들이 중국에서 싸게 해서 가져오기도 해요. 저희는 지금도 이곳에서 손으로 다 제작하거든요. 맞춤을 주로 하기 때문에... 

 

가운을 맞추기도 해요?

그럼요. 학생 때부터 입던 가운이라 나이가 들어서도 맞춰서 입는 선생님들이 많아요. 저희는 주로 맞춤 고객이 많죠.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씩 줄어가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오래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겠어요. 가운이 내 가까이에 있는 평생을 있는 건데, 그것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학생들 실습복으로 우리의 가운을 만나죠. 그들이 커서 지금은 완전한 의사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분들의 가운이 된 거죠. 소재도 점점 좋은 것으로 바뀌고 고급스럽고 맞춤이라 기성복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그분들에게 좋은 가운을 만들어 드려요. 예쁘게 입히겠다는 그 마음을 담아서요.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들 가운을 보게 되거든요? 제가 만드니까 저는 알아요. 가운의 느낌이 정말 달라요. 의사 선생님 중에서 가운을 깨끗하게 입지 않는 분을 보면 화나요. 예쁘게 입지 않으면요. 선생님 안사람이 가운을 깨끗하게 빨고 다림질을 해서 입는 원장님들 보면, 저는 그것을 보며 안사람들 칭찬을 해요. 깔끔한 가운 보면 기분 좋아요. 우리가 만든 가운을 입고 TV에 나오면 딱 알아봐요. 

 

어떻게 알아봐요? 기준이 있나요?

알죠. 옷을 봐도 알고 선생님들을 봐도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이라 알죠. 

 

이곳만의 핵심미감이 있어요?

바느질. 꼼꼼한 바느질이죠. 공장에서 10분에 하나씩 만들기 위해 기계로 박는 바느질과 1시간이 걸리는 바느질은 차원이 달라요. 땀수도 다 달라요. 주머니를 하나 달더라도 촘촘하게 예쁘게 다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예쁜 바느질을 제일 우선으로 해요. 사람에게 오랜 경험이 있어야만 나오는 것이 바느질이에요. 그냥 박는다고 다 같은 바느질이 아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술이 있어요. 자기 솜씨죠. 오래된 자신의 느낌이 있거든요. 그건 한 50년? 그래서 10대 때부터 혹독하고 어렵게 배운 사람들의 바느질은 달라요. 그런 사람들이 하는 바느질은 다 달라요. 지금 공장에서는 소매 박는 사람은 그것만 하고, 주머니 박는 사람은 그것만 해요. 옷을 하나 혼자 만들지 못하죠. 그런데 오래전부터 배워온 사람들은 혼자 옷을 완성시켜요. 결국 오랜 경력, 핵심은 그것밖에 없어요. 젊은 사람들도 배운다고 하면 질려해요.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하거든요.

 

왜 어려울까요? 선을 따라 박는 게 어려운 건가요?

그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바느질이라는 건 급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천천히 해야 하죠. 뭐라 그럴까... 성격도 온순하고 얌전한 사람이 해야 하는 거예요. 화가 나도 안되고, 신경질 나면 다 뜯어야 해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천천히 해보자 해야 해요. 

 

요즘은 빨리빨리, 보여주는 것도 빠르게 바뀌는 시대인데 반대의 방법으로 일하는군요. 생각해 보면 이 아랫부분도, 소매 끝에도 모두 바느질이 들어갔네요. 

그럼요. 그런데 요즘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요. 기술자가 없어서 이게 안될 것 같아요. 

 

주로 흰색이 많이 나가요?

흰색이 많은데 요즘은 개성이 강해서 색깔 있는 것도 꽤 입으세요. 자기 병원 오픈하면 그 색에 맞춰서 맞추고 마크도 만들어서 박죠. 벽에 보이죠? 지금까지 오신 분들의 마크예요. 

 

힘들 때는 없었어요?

힘들죠. 가게 월세도 점점 오르고, 장사도 예전보다 안되니까요.

 

그래도 터가 좋은지 굉장히 시원하고 밝은 기운이 느껴져요.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시원해요. 원래 굴다리 밑 첫 번째 건물에 있었는데 이쪽으로 이사한 지 10년 되었어요. 우리는 1층 아니라도 상관이 없어서 3층에 얻었죠.

 

신촌에 이런 곳이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제 조카도 매번 그래요. 이런 길가에, 가게 월세 비싼, 신촌에서 이 일을 안 해도 될 텐데 왜 여기 있냐고 묻죠. 마포나 옆으로만 가도 괜찮을 텐데 왜 그러냐고... 그래도 연대 학생들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고 졸업한 분들도 연대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신촌에 나오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런 분들 생각하면 다른 동네로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무도 모르기도 하고 결혼하기 전부터 신촌에 계속 살았고 20대 전부를 보내고 지금까지 계속 살았으니 떠날 생각이 들지 않아요. 

 

신촌을 무척 사랑하세요. 

없는 게 없는 곳이죠. 생활이 편해요. 어디 한 발자국 나가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신촌은 좋아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학생들이 많이 줄었죠. 1학년 학생들이 송도로 가면서 더 심해졌어요. 

 

기억나는 손님이 있어요?

많죠. 의대 학생회장 하던 사람이 60대가 다 되었는데도 여기를 오세요. 오시면서 매번 저한테 하나도 안 늙었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요. 

 

가운을 개별로 구매하려면 얼마를 받으세요?

하나에 5만 5천 원, 좋은 원단은 더 비싸고 맞추도 비싸지만, 기본적인 거요. 우리 처음 시작했을 때 가운 가격이 1,300원이었어요. 

 

이름은 연세대학교 때문에 연희사로 지었겠죠?

연희전문학교니까요. 사업자는 연희가운으로 되어 있어요. 그래도 연희사라 말하면 다 알죠.

 

사장님은 어떻게 살아오셨어요? 하나의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그냥저냥 애들 키우면서 살았죠. 저는 이 일이 맞아요.

 

왜요?

글쎄요? 뭔가 내가 만들어내는 것에 뿌듯함도 있고, 내가 손으로 잘라서 하는 것에 자부심도 있고 입었을 때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 선생님들 보면 좋아요. 그런 게 싫증이 안 나요. 

 

의사 선생님 가운이라 그런지 입으면 왠지 의사 선생님이 되는 기분이에요.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고객이 많아요. 단체 주문도 많이 했는데 그분들이 졸업하면 지방에서도 주문이 들어와요. 다른 곳에서 해 입다가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며 시간 내서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한번 사서 10년 정도 입는 분도 많아요. 미국에서 오실 때마다 들리는 할머니께서 계신 데 남편 가운을 꼭 사가거든요. 이번에 오셨는데 남편분이 휠체어를 타야 하는 상황이라 걷지 못한다고 그 상황에 맞춰 가운을 만들어서 가져갔어요. 고맙다고 문자 오고 연락 왔는데 감격스러웠어요. 어떤 부분은 줄이고 어떤 부분은 다르게 해야 하는 것을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거든요. 만들어서 입혔는데 아주 잘 맞는다고 감사를 보내왔어요. 

 

들어보니, 이 일이 욕먹을 일이 아니네요. 까탈스럽게 무언가 요청할 일도 아니고요.

그런 거 없죠. 하대하는 경우도 없고 저도 성격상 그런 걸 하지도 않다 보니 그럴 일이 없어요. 

 

이름도 박아주세요?

해줘요. 컴퓨터로 작업해서 하는데 이 주머니에 이름을 새긴 것과 새기지 않는 것이 정말 달라요. 새겨 놓으면 옷이 딱 달라져요.

 

이곳에 오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자주자주 갈아입으세요.

 

연희사 자랑도 해주세요. 

자랑요? ‘내 것 같이’, ‘내가 입는 것 같이’

 

가운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가운요? 가운은 연희사죠. 

 

마지막으로, 신촌은요? 

신촌은 나의 삶이죠. 20대부터 살면서 떠나지 않았던 곳이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