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 동네로 오셨나요?
저는 1964년부터 이 동네에 있었죠.
지난번에 잠깐 말씀 주셨어요. 이 동네 완전 토박이시고, 지금 연탄집도 서울에 몇 개 없다고 들었습니다.
영등포구에 두 개 있어요. 그런데 연탄은 이제 안 해야 해요. 연탄이 여름에 한 장도 안 팔려요. 4월부터 7월까지. 원래 한 40~50집 정도 나가야 하는데 요새는 한 7집 정도 나가요.
예전에는 어땠는데요?
이 동네는 가스 같은 거 하나도 없잖아요? 전부 연탄을 땠죠. 겨울에도 밖에 내놓고 냉장고도 없었어요. 그때는 전체적으로 거리에 행상들이 많이 다녔어요. 지금은 백화점에서 다 사지만, 옛날에는 옷도 리어카 싣고 다니면서 팔고 그랬거든요. 그때만 해도 판자 쪼가리 붙여서 그렇게 학고방 식으로 집을 지었고 나무를 대고, 사이에 춥지 않게 스티로폼을 대고 지었어요. 처음에는 스티로폼도 없었죠. 거리 포장 하나도 안 되었어요. 여기는 동신화학, 남영나이론, 롯데삼강 카드공장이 있었고 이런 집 하나에 보통 서너 집씩 살았어요. 다락도 만들어서 살고 지하도 만들어서 살았어요. 이 동네 우산 고치는 장사, 석유 난로 고치는 사람 같이 장사꾼들도 무척 많았어요. 크림도 사서 팔고. 지금은 연탄을 찾는 수요가 없어요. 그만해야 해요.
요즘에 이 동네로 예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알고 있어요. 저쪽, 저기 문래동 파출소 있죠? 그쪽에서부터 예술 하는 사람들, 커피, 젊은 사람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왔어요. 자꾸 문래동에 들어오고 있어요. 문래역에서부터 여기까지 젊은 친구들이 오더라고요. 지하철도 가깝고 술값도 좀 싸고 임대료도 저렴하잖아요. 점점 공장은 떠나는 거 같고 젊은 사람들이 밀려와요. 저녁때 되면 달라졌어요. 우체국 거기 근처는 80퍼센트 정도는 새로 들어온 가게 같아요. 그런 거 보면 이제 연탄 안 해야죠. 어디서 천 원짜리 막걸리 먹고 그렇게 살아야겠어요.
연탄은 이 동네에서만 주문하나요?
서울 전역으로 나가요. 예전에는 8톤 트럭에 이천 장에서 이천 오백 장씩 나갔어요. 요새는 천 장짜리 주문만 와요. 그마저도 여름에는 십 원도 못 벌죠.
왜 이 동네에서 연탄을 팔게 되었어요?
그냥 돈 벌려고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에요. 규모도 조금씩 늘리고, 머리를 썼죠. 제가 1964년에 제대하고 바로 문래동으로 왔을 때 천 육백 원 가지고 왔어요. 돈이 없어서 리어카가 삼천 원 정도 했는데 그거 사서 밤낮으로 일했어요. 1월 1일도 끌고 다니면서 일했죠. 같은 과일이라도 해도 돈을 못 버는 사람은 못 벌어요. 저는 아침에 일찍 나가서 저쪽 흑석동이나 노량진동 쪽으로 가서 팔고 빨리 돌아왔어요. 빠르면 오후 한 시면 오거든요. 그때만 해도 과일이나 야채는 금방 썩고 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금방 값이 내려가요. 열무 한 단에 이천 원씩 가지고 왔는데 오후 서너 시 되면 오백 원이죠. 그거 가지고 또 나가서 팔았어요. 아침에 사는 사람들이 똑같은 물건인데 더 싸게 파니까 오후 장사도 잘 되었죠. 좋아했죠. 그렇게 했어요. 오전에 한두 리어카 수량을 팔고, 다시 가서 사서 또 팔고 금방 들어와서 또 팔았어요. 한 세 번씩 왔다 갔다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한두 번 밖에 안 해요. 저는 그 사람들 보다 한두 번을 더 갔죠.
오랫동안 이 동네에 계셨는데 앞으로는 이 동네가 어떻게 변하길 바라세요?
그런 거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은 먹는장사 하고 싶어요.
뭐가 있을까요?
연탄구이. 이 동네에 잘 없어. 이런 거 준비할 것도 없어요. 청소만 하고. 젊은 사람이 올지 어떤 사람이 올지는 몰라요.
연탄. 연탄이라면 뭐. 사장님이 전문가니까요. 이 동네에서 보일러 나오기 전에는 사장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멀리서 샀어야 하니까. 그때처럼 많은 분이 오는 연탄구이집을 차리시면 좋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