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 동네로 오게 되었나요?
시골에서 올라와서 20대에 문래동에서 처음 자리를 잡았죠.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기술을 배웠어요. 그렇게 배우고 문래동으로 와서 20대부터 이 자리에서 시작해서 지금 보니까, 54년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에 이 동네는 어땠어요?
많이 들어서 알겠지만, 영단 500채라고 해서 일본 사람들 사택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 문래 공원 자리 있잖아요? 거기는 육군본부가 있었죠. 또 저쪽 1동 파출소 있는 자리는 영화 촬영장이 있었어요. 그리고 방림방적이라고 거기는 LG아파트가 생겼고, 여기 4가 안쪽은 건물도 변한 게 없어요. 공장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여기가 전부 가정집이었거든요. 한 집에 세 집, 네 집씩 살았는데 여름철 저녁에는 이 앞이 도로였는데도 마당이 된 거죠. 도로에서 다 나와서 놀다가 들어가서 자고 그랬었어요. 지금은 차가 다니니까 사라졌죠. 또 6가 쪽에는 큰 공장이 있었어요. 남영나이론하고 제일화학. 또 난로 만드는 공장,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신안공업사, 경동공업사 등 공장이 많았어요. 그때는 아침에 보면 이 길이, 이 가게 앞의 길이 큰길이었는데 반듯하게 걸어가질 못했어요. 출퇴근하는 사람들 때문에요. 이 길이 말하면 상가길이죠. 양쪽으로 구멍가게들이 쭉 있었어요.
예전엔 이 길이 명동길로 불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길 양쪽으로 구멍가게들도 많았어요. 사실은 법원이 들어오고 버스가 들어오고 사람이 들어오면서 저쪽이 발전한 거지 사실은 4가의 이 길이 많았죠. 그리고 저쪽 1가 쪽 철도 옆이 시장이었으니 거기도 사람이 많았어요.
70년대쯤이죠?
그쯤인 것 같아요. 그때 시장이 있었는데 저쪽에 고가 도로가 생기면서 길이 끊기게 되거든요. 끊기니까 시장이 없어졌어요. 남영나이론이나 방림방적이나 이런 큰 공장들이 있었을 때는 젊은 사람들이 셋방살이하고 살아서 무척 많았었어요.
그러다가 공장이 90년대 후반쯤부터 많이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제 기억으로는, 2가 쪽, 철도 쪽이 있는 게 2가인데. 그때만 해도 2가에만 공장이 많았고 4가 쪽에는 많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에 청계천 공사하면서 청계천에 있는 사람들이 문래동으로 많이 왔다고 들었어요. 오래전이라 연도를 정확하게 기억하기가 어렵네요. 그렇게 하다가 점점 늘어서 여기도 공장지대가 되었죠.
가정집이 많았을 때는 이용원이 더 잘되었나요?
이 옆이 석유가게였어요. 제가 새벽 4시에 문을 열면, 여기서 저쪽 큰길까지 줄을 섰어요. 이용원을 오려고 줄을 선 게 아니라 석유집에 오려고 줄을 선 거죠. 옛날에는 곤로를 땠잖아요? 석유난로. 그래서 석유집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공로요? 공로? 곤로?
곤로. 석유를 부어서 쓰는 난로 같은 거요. 그거 때문에 사람들이 새벽부터 석유를 사려고 와요. 그러다 보니 줄을 서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잖아요? 그때 기다리다 여기 와서 이발도 하고 그랬어요. 그때는 사람도 많아서, 종업원들도 두고 일했었죠. 머리 감기는 사람도 따로 있고, 그랬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예전처럼 되지는 않죠. 현재 남아 있는 이발소는 여기 한 집이죠. 이용원을 공식적으로 허가받아서 하는 곳은 우리 문래이용원 하나뿐이에요. 그리고 요금마저도, 그 전에 7천 원에서 9천 원 받았다가 지금은 만 원 받아요. 목욕탕에서 머리만 다듬어도 만 원 받는데, 미장원이나 그런 곳은 더 많이 받을 테고 여기서 면도까지 다 해주면서 만 원을 받는 거예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면도를 안 해도 남는 것이 적죠. 이용원 조합에서도 지금 만 원 받는 곳이 없다고 해요. 10년에 천 원씩 해서 3천 원만 올려달라고 했지만, 저는 아직 올리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가정집에서 손님이 있었다면 지금은 공장 분들이 손님이시겠어요.
그렇죠. 공장들이 있다 보니 예전에는 여러 이용원이 있었으니까 각자 손님이 있었지만, 요즘은 또 그런 것도 없어요. 동네에 다 단골 이용원이 있으니 거기 가서 하는데 싸서 여기로 오시는 분도 계세요. 또 제 기술이 맞아서 오는 분들이 있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유지가 되는 거죠. 고향에서 올라와서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만 54년, 이제 2021년이면 55년 차가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이발소에서 촬영한 분들이 있는데 절대 이 안을 바꾸지 말라고 했어요.
오래된 흔적들이 고스란히 있고, 너무 특별해요. 이용원은 어떻게 영업을 해요?
예전처럼 4시에는 못 나오고, 지금은 공장 분들이 8시나 8시 반쯤에 나오니까 저는 그 안에 6시 반이나 7시쯤 나와서 일찍 나오시는 분들을 기다려요. 이발소는 기다리는 사람이 돼야 해요. 그리고 그 전에 종업원들 있을 때는 저녁에도 8시나 8시 반 정도에 들어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7시 정도에 들어가죠. 전에는 머리 감고, 기름 바르고 드라이 손님이 많았어요. 요즘은 이발하면 머리만 감고 바로 가는 손님이 많은데 그분들은 이발만 해서 한 달에 한 번 오는 거죠. 예전에는 드라이 손님이 한 달에 몇 번씩 오셨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런 것도 변했네요.
예전보다 손님이 줄었나요?
그렇죠. 많이 줄었어요. 옛날에는 놀 시간도 없고 밥도 교대로 먹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아니죠. 공장 분들도 단골 이용원도 있을 테니 다 여기로 오시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도 여기에 오시는 손님 중에서는 천호동에서 오시고, 시화공단, 김포, 일산, 하향리, 분당 이렇게 먼 데서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도림동, 신도림, 당산동, 목동 같은 곳에서 오시는 분들은 이런 곳에 오시는 분들보다 가까운 거죠.
멀리서도 손님이 많이 오네요. 이 동네는 어떻게 변한 것 같으세요?
이 안에는 변화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주위를 보면 아파트 들어오고, 홈플러스 들어오고 그런 거죠. 안에, 문래동 3가는 좀 변한 것 같은데 1가, 2가, 4가는 그대로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2가 쪽에 예술인들도 많이 들어왔고 음식점도 많이 생겼어요.
맞아요. 2가 쪽에는 예술인분들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그러더니 요즘 와서 변했다고 느껴져요. 젊은 분들이 많이 와서 카페, 음식점, 제과점 이런 것을 차리고, 지금 코로나라서 좀 그렇지만 오후 5시에도 보면, 2가는 번화가 같더라고요. 집이 번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2가 쪽이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올 것 같고, 공장 분들이 나가면 다 젊은 분들이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