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기
동성사
(영등포구 문래동4가)

조금 있으면 이 동네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문래동에는 금은방이 일곱 곳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 왔을 그 당시는 여기가 주택이었고, 영단 500채였으니까 지금처럼 공장들이 있던 게 아니었죠. 그때는 금은방에 손님이 많았어요. 결혼반지하고 돌반지를 많이 찾았죠. 시계도. 그러다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떠나고 84년도부터 공장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언제부터 이 동네에 계셨어요?

저는 50년 전에 왔어요. 1970년에 들어왔어요. 그때는 사람도 많고 장사가 잘되었죠. 남영나이론이 직원 1200명, 방림방적이 2000명, 롯데삼강이 500명, 사람들이 많으니까 장사가 무척 잘되었어요. 84년부터 이 주변으로 공장들이 들어오니까 가정집이 밀려나고 그때부터 손님이 줄어든 것 같아요. 

 

공장들이 들어오면서 잘 되는 곳도 많았을 텐데, 금은방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오히려 우리는 공장이 들어오면서부터 잘 안되었죠.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오신 건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거 아닌가요? 

그냥 버텨온 거죠. 장사는 잘 안되었어요. 벽시계 같은 것만 가끔 팔리고 시계 수리, 제가 여기에서 시계 수리를 했어요. 금은방만 하는 게 아니라, 시계 수리까지 다했죠. 

 

이제는 왜 떠나시는 건가요?

나이가 들어서, 눈이 안 보여서 못해요. 

 

오랫동안 일하셨지만, 그래도 아쉬울 것 같습니다.

나이 들어서 못하겠어요. 힘들고, 장사도 안되니 이젠 좀 쉬고 그래야죠. 

 

이 동네는 어떻게 변하는 것 같나요? 

변한 건, 공장으로 변한 거 말고는 없죠. 그리고 저기 문래동 5가 6가는 공장이었는데 아파트로 되었어요. 예전에 남성아파트, 삼환아파트 자리, 거기가 다 개천이었어요. 그래서 이쪽으로는 수도가 들어왔지만, 그쪽은 판자촌이었죠. 공동수도를 썼었고 공동화장실을 쓰는 판자촌요. 제가 있는 이쪽은 영단주택이어서 집마다 화장실이 다 있었어요. 영단주택이 옛날에는 고급주택이거든요. 

 

왜 이 일을 선택했어요?

우선 사람이 많이 사니까요. 옛날에는 시계 수리하고 그렇게 하면 금은방을 겸했거든요. 그러면서 하게 된 거죠. 이제 저희 가게가 없어지면 이 동네에는 금은방이 없어요. 도림동이나 양평동 아무 데도 없어요. 

 

동성사, 어떻게 이름을 지었나요? 

동녁 동(東)자에 이룰 성(成). 동쪽에서 아침에 해가 뜨잖아요. 해가 뜨면서 모든 게 시작돼요. 그래서 이름을 이렇게 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