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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나라
극동문구
(영등포구 대림1동)
하트플라워

 

언제부터 이곳을 운영하셨어요? 

저는 2003년에 시작했지만, 그 전에 문구 주인이 두 분 계셨어요.

 

계속 같은 이름으로 운영하신 거죠?

네, 저도 같은 이름으로 했어요. 처음에 하셨던 분도 극동문구, 다음에 하셨던 분도 극동문구, 그리고 저도 그냥 극동문구로 했어요. 

 

처음에 여기서 시작했을 때는 어땠어요?

무척 잘됐죠. 문방구도 많았어요. 저쪽의 중학교까지 일곱 곳이 있었어요. 다 사라지고 저희만 남았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곳은 어떻게 변했어요?

저도 가게를 내놓았어요. 매출이 너무 안 나와요. 지금 여기 문방구에서 아이들이 준비물을 사가는 경우가 없어요. 떨어져야 노트 한 권 정도 사지, 리코더, 멜로디언 같은 것은 학교에서 다 줘요. 나라에서 예산을 학교로 보낸다고 해요. 좋은 취지의 일이지만, 문방구는 힘들죠.

 

그래서 예전보다 문방구에 학생들이 잘 없다고 느껴지나 봐요.

아이들이 오긴 오는 데, 먹는 거, 이런 가지고 노는 장난감, 샤프 한 두 개 가지고 싶은 것만 사러 와요. 게다가 지금은 온라인 수업을 많이 해서 노트를 안 써요. 또 학원 같은 곳에서 홍보하느라 연필, 노트, 볼펜 등은 그냥 나눠줘요. 그러니까 문방구에 와서 살 게 없죠. 저도 무척 고민하다가 가게를 내놨어요. 나가지도 않고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요. 

 

조금 있으면 없어질 수도 있겠어요. 

여기 없어지면 이 동네에는 문방구가 없어요. 처음에 5, 6년 정도는 잘 되었어요. 그때는 학교에서 준비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와서 다 샀어요. 준비물 사러 밤 11시 반에도 손님이 왔어요. 지금은 손님이 안 와요. 

 

왜 처음에 문방구를 하려고 하셨어요?

저는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며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여기로 아이들 준비물을 사러 왔어요. 그때 할머니 한 분께서 하고 계셨는데 할머니께서 자기는 이제 정신도 없고 젊은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한테 한번 이야기를 했을 때는 애들 키우느라 듣지 않았는데 일 년 정도 흐르고 아이들 준비물 사러 또 왔는데 그 할머니께서 그때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사실 저희 시동생이 문방구를 하다가 그만뒀는데 그 당시에는 이마트도 없었기 때문에 장난감도 많이 팔리고 잘 되고 바빴다는 걸 알았어요. 시장 근처 주택가에서 했는데도 그렇게 잘 되었다고 들었거든요. 시동생 아이가 어렸는데 그 아이가 다쳐서 문방구를 접었죠. 제가 동네 문방구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시동생이 하라는 거에요. 남편은 애들 키우는 게 돈 버는 거라고 못하게 했는데 결국 시작했어요. 우리 막내가 20대 중반인데 그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요. 이 앞에 학교 다니고 엄마가 문방구를 하니 막내는 좋았죠. 친구들이 자기들 엄마한테 우리 아이 이름 말하면서 왜 그 아이 엄마가 문방구를 하냐며 자기 엄마가 문방구 하라고 때 쓰는 아이도 있었다고 해요.

 

아이들은 문방구를 무척 좋아해요. 저도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놀던 기억이 많거든요. 사장님께서는 문방구를 운영하면서 좋았던 기억이나 특별한 손님이 있나요?

저희 문방구에 아빠는 계시지 않고 엄마는 매일 출근했던 아이가 여기 와서 항상 있었어요. 또 ‘몇 살까지 여기 하실 거에요? 저 클 때까지만 기다려주셨다가 자기한테 물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일하면서 있다 보니 아이들이 참 예쁘더라고요. 기억이 나는 건 이렇게 나가서 보면 저쪽부터 아이들이 넘어질 듯이 뛰어와요. 그런데 그게 우리 가게에 오기 위해 뛰어온 거예요. 저는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저 아이들이 어디를 가려고 저렇게 뛰지?’ 생각했는데 여기로 오는 거예요. 그 생각만 하면 무척 기분 좋죠. 

 

뿌듯했겠어요. 거주도 이 동네에서 하셨나요?

대림동에 거의 40년 살았어요. 제2의 고향이에요. 

 

이 동네는 어떤 변화가 있어요?

여기는 대림시장이 없어졌죠. 그게 조금 아쉬워요. 원래 여기 앞 초등학교가 없었거든요. 이쪽은 가발공장이면 저쪽은 김치공장이 있었고, 그 사이에 이 길이 있었어요. 그 사이 이 길에 대림시장이 있었고 이 길은 이어지고 뻥 뚫린 길이었어요. 완전히 번화한 길로 그 안에 채소, 과일은 물론 약국이나 다른 장사 가게들도 무척 많았죠. 대림시장까지 번화가였어요. 그랬는데 어떻게 보면 길 중간에 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림시장이 점점 사라지고... 길이 나뉘었지만, 이어져 있는데도 직선으로 있을 때와는 다르더라고요. 여기도 저쪽도 원래는 가게 자린데 새로 집을 지어서 주거용으로 바뀌었죠. 

 

그런 변화들이 문방구에도 영향을 주었겠어요. 

그렇죠. 그리고 저기 신호등 나가기 전에 새로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예전에는 거기도 상가가 무척 많았어요. 태양의 집 쪽도 쭉 올라가면서 상가들이 많았는데 점점 이 동네가 변화를 맞이한 거죠.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가게도 잘 없고, 이 앞에 상가들도 다 창고예요. 그냥 문 닫고 필요하면 문 열고 뭐 가져가는 그런 창고로 쓰고 있어요. 

 

사장님께서 이곳을 시작할 때는 초등학교가 있었을 때인가요?

그때는 있었죠. 그때부터 뭔가 동네가 달라져 가는 중이었어요. 

 

이 동네에는 교포분들도 많죠?

많죠. 여기 뽑기 기계를 관리하는 분이 이 동네에 왔는데 동사무소에서 재활용 같은 물건을 실어가는 차에서 중국어로 방송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해요. 한국어로 하고 중국어로도 하는 걸 보더니 '나 중국 온 줄 알았어요'라고 했어요.

 

예전과 동네가 달라지는 느낌이 그런 부분에서도 느껴져요?

엄청 많아요. 아이들이 와서 중국어로 대화하는 걸 보면... 중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중국말을 더 많이 해요. 중국말을 하다가 한국어 배워서 한국말도 잘해요. 

 

아이들은 문방구에서 무엇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유희왕 카드가 엄청 인기가 많았어요. 아이들이 여기서 몇만 원어치 샀어요. 지금은 포켓몬 카드가 잘 나가요. 

 

앞으로 문방구는 어떻게 될까요?

변할 게 없어요. 코로나로 2020년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잖아요? 장사가 아예 안돼요. 아이들이 없거든요. 참 힘들고 그 이후로 저도 가게를 내놓은 거죠. 물건값도 안 되는 돈으로 가게를 내놓았어요. 제 생각에 문방구는 하행길이고 없어질 종목 중 하나에 들어갈 것 같아요. 대형마트에는 이런 물건을 파는 곳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 영향도 있겠죠. 

 

사장님에게 문방구는 어떤 곳인가요?

저는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하고 10년 정도 아이들만 키우다가 처음으로 사업이라고 시작해본 곳이에요. 여기서 아이들 다 키웠죠. 동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 문방구인데 그곳을 제가 한다는 게 우리 아이들한테도 굉장히 좋았다고 해요. 특히 우리 막내가 지금도 이야기를 해요. '나 학교에서 나오면 바로 앞 문방구에 엄마가 있어서, 좋았어' 가게 안에 쪽방이 있었어요. 거기서 같이 공부하고 같이 퇴근했죠. 밥도 먹을 수 있도록 시설도 해놓아서 같이 밥 먹고 퇴근했어요. 우리 막내 친구들이 저기 안에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는 말을 무척 많이 들었데요. 집도 따로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막내는 이 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그냥 우리 쉬는 곳이라고만 하고 자기만 왔데요. 아이들이 아플 때도 그 안에서 누워있다가 같이 집에 가고 그랬어요. 제가 옆에 있는 것, 직장 생활을 하러 나가는 것보다 여기 있는 게 좋았어요.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서요. 우리 조카들도 다 여기에서 돌봤어요. 데려갈 때까지 여기 있었어요. 엄마가 어디 출근했는데 아이가 아플 때 빨리 못 달려와서 마음 졸이는 일이 없었죠. 저는 그게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