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기
예원문구
법대문방구
(종로구 이화동)
코끼리문방구

 

언제부터 문방구를 운영하셨어요?

이 앞이 예전 서울대학교 법대가 있는 건물이었어요. 예전부터 법대 자리라고 해서 법대문방구라고 했죠. 제가 오기 전부터 이 자리는 법대문방구였고, 저도 여기에서 이어서 법대문방구를 운영한 지 30년이 되었어요. 저는 충청도가 고향인데, 자식들이 다 서울로 대학교를 와서 이 근처에서 자취했어요. 그래서 저도 이화동으로 와서 문방구를 시작했어요.

 

법대 건물을 기억하는 손님도 있겠어요.

법대 졸업한 사람들이 종종 와요. 플랜카드를 들고 여행 모자를 쓴 신사들이 가장 비싼 제품 달라고 하면서 오는 거예요. 또 문방구 간판 바꾸지 말라고 자식들하고 온 할아버지도 있어요. 

 

법대 건물은 언제 없어졌어요?

건물은 1974년도에 없어지고 1975년도에 관악구에 생겼다고 들었어요. 저기 금연구역이라고 붙여놓은 기둥 보여요? 그게 법대 기둥이에요. 안 없어졌어요. 그래서 기둥을 중심으로 이쪽은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 초등학교이고 저쪽은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 중학교에요. 

 

어떻게 문방구를 하게 되었어요? 

우리 남편이 서울에 가서 문방구를 해야 아이들 뒷바라지 할 수 있다고 해서 한 거죠. 저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남편 말을 들었어요. 

 

시작했을 때 손님들은 많았나요?

그때는 문방구가 괜찮았죠. 영업을 밤 9시까지 했거든요. 그때는 인터넷 같은 것도 아예 없던 시절이라서 물건을 배송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다 주문해놓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만 문방구에 와서 구매해요. 그래서 문방구들이 다 어렵죠. 

 

사장님께서는 문방구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요?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서 일했던 기억만 많죠. 어떤 아가씨가 여름에 문방구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게 고마웠는지 커피, 생강차, 토스트를 주고 갔어요. 지난주에 온 어떤 아가씨는 공연을 보러 광주에서 왔는데 오후 6시 공연인데 시간을 잘못 알아서 오후 2시에 왔데요. 돌아다니다가 저희 문방구에 온 거죠. 마침 제게 공연하는 친구들이 우리 문방구 옆에 광고 포스터를 붙이고 감사하다고 준 표가 있었거든요. 제가 가서 볼 시간이 없었는데 그 아가씨가 공연을 좋아한다고 하고 사람이 좋아 보여서 줬어요. 오후 3시에 하는 공연이었는데 법대문방구에서 왔다고 하고 보고 오라고 한 거죠. 그랬더니 공연을 보고 다시 여길 와서 너무 재밌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갔어요. 

 

사장님에게 문방구는 어떤 곳이었어요?

이제 문방구는 저같이 나이 든 사람만 하게 되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타산이 맞지 않고, 그전에는 저 옆에 가방 집 하는 자리에도 문방구가 크게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저는 여기를 오니까 집에만 있는 것보다 재밌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고,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과 이야기도 하죠. 돈 주고 놀고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저는 저 나름대로 문방구를 천국이라고 불러요. 집에 가서 쉬고 문방구에 와서 일하니까 좋아요. 제 나이에 다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힘들긴 해도 저는 일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저는 편해요. 게다가 물건이 팔리거나 팔리지 않거나 신경 쓰지 않지만, 물건을 다 갖춰놔요. 여기 말고도 저쪽 창고에도 또 있어요. 물건을 갖춰놓으면 오는 사람들에게 없다고 할 필요 없고 그 사람들에게만 판매해도 좋아요. 물론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물건을 계속 갖춰놓는 것도 노하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건 없어요. 무대포로 해요. 그전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차로 물건을 주고 그러기도 했어요. 지금도 제가 주문하기만 하면 차로 물건을 실어다가 주는 사람들은 있어요. 만원이면 천 원 정도 남는 거라 수익이 적어요. 그래서 지금도 가벼운 것은 제가 직접 가서 가져와요. 쇼핑백 매달린 작은 수레에 담아와요. 

 

어디에서 상품을 가져오세요?

동대문요. 창신동이요. 여기 마을버스 3번을 타고 가서 여기서 타면 한번 쉬고, 두 번째 쉬면 바로 그 시장이에요. 도매로 가져다가 팔죠. 그리고 예를 들면 복사지 같은 무거운 건 누가 실어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만약 여기까지 택시를 타야 할 경우는 복사지를 많이 가져와요. 노하우는 아니고 그냥 하는 거예요. 

 

문에 붙여놓은 글귀가 인상적이에요.

제가 문방구 문을 닫고 자물쇠를 반듯하게 세워놓거든요. 어느 날 봤더니 자물쇠가 까끌까끌하더라고요. 누가 문을 열려고 했나 봐요.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제가 달력에다가 '좋은 생각 하세요'를 써서 문에 걸어놨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같은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줬어요. 어디를 가든 행동이 반듯하고 바르게 살아야 해요. 그래야 그 사람을 되새겨 보죠. 제가 문방구에서 가끔 일기도 써요. 이것 봐요. 여기 있죠? 11월 10일, 법대 여학생, 쌍화차, 토스트. 처음 시작할 때에는 한 줄 밖에 못 썼어요. 그런데 이제는 반 장 정도까지 쓸 때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