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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집
태양슈퍼
(영등포구 문래동2가)
문래열쇠1

슈퍼를 운영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46년 되었어요. 46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젊었죠. 그때가 좋았어요. 마을금고에도 사람이 많았었거든요. 그땐 지금 자리에서 하지 않고 마을금고 자리에서 했었어요. 그곳이 팔려서 저도 여기로 옮겨 왔죠. 이 자리에서는 25년 되었네요.

 

어떻게 문래동에서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 동네에 아시는 분이 계셨어요? 

제가 명화극장 앞에서 가게를 하다가 문래동으로 온 거예요. 저쪽에 대철금속이 있는 자리가 원래는 주택은행 자리였는데 거기서 구내식당을 했어요. 처음에 주택은행 직원이 17명이었는데 커지면서 서른 몇 명 되고 그러니까 좋았죠. 제가 구내식당을 하니 직원들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2시면 와요. 은행직원들이 밥을 빨리 먹고, 나가서 식사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 2시부터 할 일이 없잖아요? 광진금속 앞 사거리의 포장마차를 15만 원에 판다고 하길래 제가 저녁에 하려고 제가 샀어요. 문래동에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먹기 좋거든요. 

 

그때 문래동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생각해보면 그때는 동네가 꽃밭이었어요. 차 있는 집도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저 앞의 문래갈비 사거리에서 남영나이론 회사 방향으로 걸어가면 누구라도 다 볼 수 있었어요. 작은 공장들이 생기면서부터 차가 한 대, 두 대 늘고 그렇게 길에서 사람이 잘 안 보이게 되었네요. 그러다가 저도 구내식당에서 나와서 새마을금고 자리를 얻어서 장사하게 되었어요. 그 건물 1층에는 제 가게와 그 옆으로 두 개의 가게가 있었고, 지하에는 개미주점이라고 신길동 살던 사장이 옥다방을 운영하다가 주점으로 바꿨어요. 2층은 짜장면집 하나 있었고, 3층은 당구장이죠. 장사가 무척 잘되었어요. 가발공장과 한영전자에 각 직원이 200명이 넘었죠. 어떤 때는 한영전자 직원들이 11시에 끝나면 다른 손님도 안 받았어요. 그렇게 장사를 잘하고 있었는데 그 건물이 팔린다고 하면서 저도 옮겨야 했죠. 새벽에 일 마치고 가게를 어디에 얻으면 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참사랑병원 옆 담뱃집 할머니가 저보고 옆에 복권 파는 가게가 나왔으니 저보고 얻으라는 거예요. 제가 계약하려 했는데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 아줌마가 자기 손님 빼앗는다고 하길래 제가 안 얻었어요. 욕먹고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가게 자리 때문에 걱정을 하면서 있는데 다른 사장이 쪽지를 하나 주고 가는 거예요. 지금 이 가게 자리를 내놓는다고 써 붙여 놓은 거죠. 그때 40만 원이었는데 처음 봤을 때는 이 자리가 엉망이었어요. 여기 이 부분이 호이스트 자리라 깊어서 파내고 공사를 했어요. 이 자리가 52평이에요. 제법 커요. 그렇게 들어와서 분식집을 하기도 하고 막걸리도 팔았죠. 예전에는 막걸리를 50병씩 넣어 놔야 했어요. 1병은 5천 원이고 국대접은 2천 원씩 팔았는데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먹고 마시고 돈은 밑에 놔뒀어요. 그러다가 슈퍼까지 하게 되었죠. 그렇게 살았어요. 

 

왜 태양슈퍼라고 이름을 지은 건가요?

이름은 제가 지었고 역사가 있어요. 왜 태양슈퍼라고 했냐면, 저쪽 문래갈비 자리 옆이 원래 양지여관이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양지라는 말뜻이 좋은 거예요. 모든 곳에 햇빛이 안 들어가면 꽃도 안 피잖아요? 만물이 소생하려고 해도 햇빛이 들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런데 여기로 이사를 오려고 보니 이 앞에 양지식품이 있는 거예요. 제가 양지로 하면 좀 그렇겠다 싶어서 태양이 밝아야 뭐든 소생하잖아요? 그런 의미로 양지나 태양이나 똑같잖아요. 또 아침 해가 밝아야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서, 제가 태양슈퍼로 이름을 지었죠. 사람들이 다 이름을 잘 지었다고 해요. 

 

이 동네 공장 사람들 대상으로 영업을 하셨잖아요? 다른 곳과는 자주 찾는 상품이 다를 것 같아요.

지금은 팔리는 게 잘 없죠. 예전에는 제가 음식을 특이하게 하니까 장사가 잘되었죠. 밥하다가 분식도 했었고. 줄 서서 먹고. 처음에 여기 열 명 정도 앉을 방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쓰지 않지만, 여기 2층에 만들었죠. 구멍가게 하면서 지금은 지저분한 게 많아졌는데 그때는 그랬었어요. 파전이 소문이 나서 방송국에서도 와서 촬영했어요. 지금은 핸드폰 영상보고 젊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