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문방구를 운영하셨어요?
저는 오래되었어요. 40년 정도 되었어요.
처음에 여기서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변화가 있나요?
예전에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제 기억에 오류 초등학교의 학생 수가 구천구백 명이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한 학년에 이십 삼 반까지 있었어요. 저쪽 지하철 길 넘어서는 오류2동인데 거기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천 명이 그쪽 초등학교로 갔고 옆 동네인 온수동에 산을 깎고 온수초등학교를 지어지면서 이천 명이 그 학교로 갔다고 들었어요. 오류 초등학교에는 오천구백 명 남았는데 매봉 초등학교, 세곡 초등학교, 오정 초등학교 등으로 다 갔죠. 그러다 보니 지금 오류 초등학교 학생이 육백여 명 정도 있어요. 한 학년에 오 반까지, 한 반에 이십여 명뿐이라 학년별로 백여 명 정도 있죠. 그렇게 학생이 줄었어요. 또 예전에 입학하는 일학년들은 검은 알, 흰 알 각각 스무 개씩 든 오백 원짜리 바둑알을 샀어요. 바둑알 세면서 공부하는 거라 몇 개 시켜서 놔뒀는데 하나도 팔리지 않는 거예요. 제 기억에 1998년 3월. 왜 그런가 해서 알아보니 IMF 이후 실직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정부에서 학교에 물건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 당시에 사천만 원 정도 되는 물건이 왔다는데 색종이, 색도화지, 수수깡, 찰흙까지 다 왔다고 해요. 그러니 학교 앞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문방구에 학생들이 올 이유가 없어진 거예요. 그해 3월, 제 기억에 등교하는 아이들을 쳐다보기만 했어요. 다른 문방구에서는 가겟세를 내야 한다고 문구들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떡볶이나 분식류를 팔기도 했죠. 저희는 이 근처에 떡볶이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 떡볶이 장사하는 사장이 괜찮다고, 하라는 말도 했어요. 그래도 앞에 떡볶이 장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차마 같은 걸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어쨌든 제 기억에 그때부터 판매가 줄었어요. 오류 초등학교 학생이 구천구백 명 있었을 때 이 거리에 문방구가 열일곱 곳이 있었어요. 양쪽으로 열일곱 곳이 늘어서 있었죠. 아침에 등교하고 오후 되면 또 등하교하니 아이들이 문방구에 정말 많이 왔어요. 국기함을 천 원에 팔던 때에 칠십여 명이 한 반에 있었기 때문에 한 반에 오십 개 이상 팔았어요. 지금은 삼학년에 리코더나 소금이 필요하면 학교에서 나눠주고 오학년에 단소 시작하면 그것도 학교에서 나눠주기 때문에 문방구가 되지 않죠. 열일곱 곳에서 세 곳으로 줄고, 작년에 그중 하나가 문 닫았어요. 이제 이 동네에는 문방구가 두 곳뿐이죠. 전에는 12월 되면 연 재료를 사서 연을 날리거나 크리스마스트리 꾸미는 재료도 샀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어요. 그나마 실내화만 사요. 공책도 온라인으로 다 하고 학교에서 급식을 맛있게 먹고 오니 군것질하러 문방구에 올 일이 없어요.
문구를 배송해주는 업체나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의 영향도 있을까요?
그런 곳은 물건이 싸지만, 우리나라 제품이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이런 색연필이 있어요. 저희는 60년 전통의 이 색연필을 파는데 그런 곳은 메이커가 없는 중국산 제품을 팔아요. 또 펜도 마찬가지죠. 중국산 제품 중에서는 싸지만 오래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거든요. 가끔 그런 걸 아는 손님들은 여기 와서 사요. 예를 들면 이 파일철은 문화주식회사라는 곳의 제품이에요. 중국산 제품들은 세워놓으면 힘이 부족해서 잘 세워지질 않는데 여기 제품은 그렇지 않아요. 가격은 칠백 원, 팔백 원 더 비싼데도 저는 이 제품을 팔아요. 학부모들도 아는 분들은 저희 가게를 오고 싼 제품을 찾는 부모들은 다른 곳으로 가요. 공책도 모닝글로리 제품만 팔아요. 눈이 덜 피곤한 종이를 쓰거든요. 싸게 나온 중국산 제품이랑 달라요. 우리나라 제품이 좋아요. 저렴하다고 아무 물건이나 팔지 않죠. 그게 제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사장님께서는 문방구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많은 학생이 이곳에 왔지만 그 아이들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혼내본 적이 없어요. 여기에 온 손님이고 남의 집 귀한 아이들이잖아요. 가끔 물건을 훔쳐가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도 '혹시 구경하다가 이게 너 가방에 잘못 들어갔으면 나 다시 주면 안 될까? 그건 잘못한 게 아니야. 그럴 수 있어. 그럴 때는 그냥 다시 날 주면 돼' 하면 대부분 아이는 '여기요' 하고 다시 돌려줘요. 저는 아이들이 오지 않으면 보고 싶어요. 문방구는 아이들이 와야 운영이 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은 다 예뻐요. 싫은 게 없죠. 그리고 문방구에 와서 '이런 게 다 있네' 하면서 사 가는 사람도 있고 외국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올 때 2만 원, 3만 원씩 사 가는 사람도 있어요. 또 옥수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여기까지 와서 물건을 산 친구도 있고 서초동에서 자기 엄마하고 이 앞에 있는 뽑기 기계를 하러 온 친구도 있었어요. 그 친구는 뽑기 기계를 몇만 원어치 하고 다른 물건들도 실컷 사서 갔어요.
예전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이 다른 부분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예전보다는 인사하는 걸 어려워 해요. 예전보다 인사를 잘 하지 않죠. 또 제 생각이지만 예전보다 숫자 계산을 잘못하는 것 같아요.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걸 어려워 해요.
처음에 왜 이 동네에서 문방구를 하려고 하셨어요?
그전에는 회사 다녔는데, 지인이 이 동네에서 문방구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가게를 인수 했어요. 그 가게가 지금 이 자리 말고 저쪽 건너편 자리에 있던 대한문구에요. 이 자리는 원래 공인중개사 사무소였는데 다른 동네로 이사한다길래 이 자리로 제가 들어온 거죠. 대한문구로 그대로 이 자리에 들어온 지 16년 되었어요. 9월 16일요.
제가 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이 계속 들어와요.
오류2동에도 문방구가 없어요. 거기에서 여기까지 와요. 코팅도 하고 수정 테이프도 사러 와요. 요양보호사 시험 볼 때 쓴다고 사러 와요. 오류동에서 만드는 어떤 신문에 낸다고 인터뷰를 한 적도 있어요. 그때는 삼십 년 되었을 때인데 벌써 십 년이 지났네요. 저희 참 오래되었죠. 대한문구하면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싸게 팔면 팔았지 비싸게 받지 못해요.
구슬 사는 사람도 많이 보여요.
구슬이 은근히 잘 팔려요. 다른 곳에 없다고 하면서 사 가요.
사장님에게 이 동네는 어떤 곳이에요?
여기 좋아요. 크게 개발되거나 발전하진 않았지만, 노인들이 많이 살아요. 아파트가 크게 들어선 곳이 없죠. 젊은 사람들이야 아이들 데리고 신도시로 가고 오래된 사람들은 여기 계속 살아요. 저도 아침에 5시에 와서 여기 연탄불 넣어놓고 한 시간 반을 걷고 와요. 이 동네는 크게 바뀌는 건 없어요.
동네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아이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어요.
정부에서 지역의 문방구가 상생하는 방안을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